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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가깝고도 먼 섬 독도와 울릉도(펌)

가깝고도 먼 섬 독도와 울릉도
최동단 외로운 섬 하나/ 여긴 피끓는 민족의 심장

조국이니 애국이니, 평소에는 참 진부하게 들린다. 하지만 독도에 가보시라. 그렇게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 표현이 없다. 이런 단어 외에 이유없이 붉어지는 눈시울을 어찌 설명하리. 무장한 독도경비대원이 운무가 뿌옇게 깔린 동도에서 서도를 향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지독한 배멀미. 오전 7시 먹구름이 잔뜩 낀 울릉도 도동항을 출발, 독도로 향하는 삼봉호 선실. 철썩~ 전날 풍랑주의보는 풀렸지만 여전히 높은 파도가 뱃전을 매섭게 내려쳤다. '드디어 독도로 간다'고 흥분에 겨워 하던 승객들은 말문을 닫은 지 오래다.

망망대해로 나간 지 1시간 여, 평소 멀미가 뭔지 모르던 기자도 머리가 띵해지면서 식은 땀이 온 몸에서 흘러나왔다. 이미 1층 두 칸 화장실 앞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줄을 선 승객들로 북새통이다.

"그래도 오늘은 나은 편입니다. 기상이 안 좋은 날은 승객들 90%가 멀미를 하는 걸요." 삼봉호 선원의 위로에도 불구, 부글대는 뱃속은 계속해서 위급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국토의 최동단 막둥이 독도를 면회 가는 길은 멀고도 지난했다. 적지 않은 배삯과 일정은 차후 문제다.

우선 울릉군청으로부터 사전에 입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당일 400명 안의 순번에 들어야 한다.

이것이 해결되면 이번에는 천기(天氣)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독도의 첫 관문 울릉도. 들쭉날쭉한 기상으로 입항이 가능한 날이 연중 절반에 그친다. 여기에 접안시설이 열악한 독도에 배를 댈 수 있는 날은 고작 50여일이다. 지난해 겨울 3개월은 아예 울릉도에서 출항조차 못했다고 한다. 이달 초 모 정당 대표는 헬기를 이용해 4전 5기만에 독도 땅을 밟았다. 이러다 보니 독도 가는 길이 '로또복권 당첨'이라는 우스갯말이 나돌 정도다. 설사 독도에 들어선다 해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은 30분에 불과하다. 그마저 콘크리트 선착장에서만.

험난한 독도 여정, 결코 눈요기 관광이 될 수는 없다. 어쩌면 순례객처럼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은 와야 할 성지일지 모른다.

동도의 대한민국 동쪽 땅끝 표석.
그렇게 비몽사몽 2시간쯤 흘렀을까, 왼쪽 선창 너머로 검은 물체 하나가 덩그러니 나타났다. 승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가슴 한복판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아, 독도여….짙은 해무에 감싸인 독도는 더없이 평온하고 신비로웠다. 먼 바다에서는 섬이 있는지조차 모를 일이다.

선착장에 내리니 낯 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서도에 사는 유일한 독도 주민 김성도 씨 내외다. 어민 투표가 있어 울릉도로 나가려고 삼봉호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김 선생님 뵈려고 이 곳까지 왔는데 꼭 가셔야 하느냐'는 기자의 생떼에 울릉주민 특유의 미소로 화답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독도 사진과 함께 큼지막한 글씨로 '독도 주민'이라고 박혀 있다.

허락된 30분이 쏜살같이 지나고 관광객들이 다시 삼봉호에 올라 탔다(기자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경북지방경찰청, 울릉군청의 승인으로 이틀간의 체류가 가능했다). 못내 아쉬운 듯 중년 승객 한 명이 서도와 동도를 번갈아 보면서 한 마디 내뱉었다. "우리 국민이 왜 우리 땅에서 쫓기듯 떠나야 하지?"

그렇게 그들은 떠나고 기자는 남았다, 외로운 섬 하나 독도에.
울릉도의 별미들

홍합밥 · 오징어 내장탕… "여기 아니면 맛 못보지"
울릉도는 기암절벽과 원시림도 절경이지만 무엇보다 먹는 기쁨을 향유할 수 있는 섬이다.

대표적 먹을거리는 홍합밥(사진위). 도동항서 가까운 구시장 내에 위치한 가정집을 개조한 조그만 '보배식당'(054-791-2683)이 원조집이자 가장 잘한다. 15년간 오로지 홍합밥 하나를 팔고 있다. 주 재료인 홍합은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만 양식 담치가 아니라 울릉도 앞바다에서 잡히는 어른 손바닥만한 홍합을 잘게 썰어 참기름과 간장을 넣고 한 밥에 양념장과 잘게 부순 김을 비벼 먹는다. 여기에 물김치와 울릉도 고유의 나물인 명이 삼나물, 부지깽이 취나물을 곁들여 먹으면 일품이다. 심심하면서도 아주 깔끔하며 맛깔스럽다. 특히 성인봉 골짜기에서 채취되는 명이는 쌈으로, 김치로, 장아찌로 요리해도 모두 맛나다. 1만 원.

시원한 국물을 원한다면 오징어내장탕(사진아래)을 맛보자. 도동 새마을금고 옆 '99식당'(054-791-2287)이 돋보인다. 주민들은 매운탕으로 먹지만 99식당은 오징어 내장에 콩나물과 부추 무 마늘 등을 곁들여 맑은 국으로 내놓는다. 7000원. 따개비밥도 빼놓을 수 없다. 직경이 1.5~2㎝에 불과한 작은 패류인 따개비를 살짝 데쳐 알맹이를 떼낸 뒤 참기름에 볶아 밥을 한다. 이 또한 별미다. 하지만 조금 비싸다. 1만3000원.
울릉도에 세계 최고령 나무가 있다?

도동항 수령 2500년 最古향나무… 일부 학자 5000~6000년 추정
신비의 섬, 울릉도. 같은 화산섬인 제주도와 달리 울릉도에는 뱀이 없다. 그 이유가 제사 때 피우는 향나무의 강렬한 향 때문이라고 울릉 주민들은 말한다. 침엽수의 일종인 향나무는 예부터 청정 능력과 퇴마 효과가 있다고 여겨져 우물 근처에 꼭 한 두그루 심어 왔다.

향나무는 크게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토향(土香)과 바위 틈을 비집고 움을 틔우는 석향(石香)이 있다.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석향이다. 오랜 세월 기암절벽 위에서 해풍을 맞은 탓에 1년에 2~3㎜만 자랄 정도로 성장 속도가 극히 더디다. 따라서 어린아이 키 높이 정도인 것도 수령이 수백 년은 넘는다. 이런 진귀한 향나무가 한 때 울릉도에는 땔감으로 쓰였을 정도로 흔했지만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제는 서면 남양리의 통구미와 태하리의 대풍감 그리고 도동항 입구에서만 향나무 군락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중 도동항 입구 우측 암벽 봉우리('비취노래연습장' 바로 위)에는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2500년 추정·사진)가 자라고 있다. 밧줄에 몸을 맡긴 채 비스듬히 누운 풍채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 향나무의 수령을 5000~6000년 정도로 내다보는 일부 학자들도 있다. 해수온천 입구에서 가장 또렷이 올려다 보인다. 현재 공식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브리스틀콘 소나무로 수령 5000년으로 추정된다.

이 신비한 고목을 더 면밀히 감상하고 싶으면 도동약수공원 입구의 '승리기념품'을 찾을 것. 지난 1985년 태풍 브랜다에 의해 이 향나무에서 잘려 나간 주 가지(3m)를 가게 주인 서귀용 씨가 공매 입찰을 통해 사들인 뒤 용 모양으로 조각해 가게 내에 전시해 놓고 있다.
울릉도 - 원시의 섬, 신비속으로

변두리만 돌고 다보셨다고요? / 속사정을 모르셨구나
물가비싼 여름 성수기보다 5~6월 여행 적기
해안로는 기본, 묘미는 안쪽 분지와 봉우리
섬 주민들 삶의 체취와 넘치는 인정이 백미

독도에 가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울릉도는 참 멀다. '편의상' 가깝게 표시해 놓은 관광지도의 위치만 믿고 나섰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포항항에서 뱃길로 장장 217km. 쾌속정으로 바다 위를 나르듯 달려도 3시간이 넘는다. 그래서 울렁~울렁~울릉도일까(사실 울릉(鬱陵)은 숲이 울창한 언덕이란 한자어다).
그러나 울릉도의 신비는 머나먼 거리에 비례해 늘어난다. 울릉도의 성수기는 장마가 끝나는 한여름. 하지만 이 때는 고삐 풀린 물가와 시장통 같은 울릉도만 있을 뿐이다. 울릉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살짝 귀띔한다. "울릉도는 5, 6월이 제철입니더, 퍼뜩 오이소."
자, 그럼 또 다른 세상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일주도로를 돌면서 내려다 본 한 폭의 그림같은 울릉도 해안 풍광.
#뻔하지만 안 보면 후회할 코스

울릉도 관광에는 '공식'이 있다.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 일대를 둘러보고 나서 해안선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 관광이 그 것. 울릉도를 처음 방문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속는 셈치고 따라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하지만 '사람 몰리는 식당 밥맛도 좋은 법'이다.

일단 도동항 여객터미널에 내리면 기암괴봉과 산중턱까지 흘러 내려온 안개구름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런 느낌은 울릉도 곳곳에서 만끽할 수 있다). 이방인을 반기는 단아한 괭이갈매기들의 날갯짓이 정겹다.

도동 일대, 울릉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폭 100m가 안되는 협곡 사이로 식당·여관·가게 등이 송곳박히듯 자리잡았다. 시끌벅적 웬만한 대도시보다 번잡하다. 땅값도 평당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도동항 해안산책로의 좌판 행상.
도동항 좌우로 해안산책로가 있다. 여객터미널 쪽이 그 유명한 행남해안산책로다. 깎아지른 해안절벽 가장자리에 철제 통행로가 빙 둘러쳐져 있다.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들도 곳곳에 보인다. 발 밑으로 파도가 밀려와 비누거품처럼 포말을 만들며 부서진다. 맑은 물색이 물감을 푼 듯 진한 감청빛이다. 손을 담그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다. 그렇게 40분 정도 '바다위의 산책'을 마치면 하얀 외벽의 행남등대가 나타난다. 왔던 길로 되돌아 가기 싫으면 옆으로 난 산길을 통해 2km 쯤 걸으면 다시 도동의 울릉군청으로 나오게 된다.

도동항에서 500m쯤 올라가면 독도박물관이 있는 약수공원이다. 박물관은 삼성이 지어 울릉군에 기증한 것으로 독도에 관한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옆 도동약수터. 물맛이 쇳물에 가깝다. 그래도 각종 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하니 꼭 마셔 보자. 그 옆에는 독도전망대를 오르내리는 35인승 케이블카(성인 6500원) 정류장이 있다. 하지만 웬만큼 청명한 날씨 아니면 독도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울릉도 일대의 조망이 한 눈에 잡힌다. 밤에 오르면 '100만불 야경'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다. 도동항 일대의 오색 불빛과 칠흑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오징어배의 어화(漁火), 거의 별천지 수준이다.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인 나리분지에 있는 너와집 내부.
도동 일대를 둘러봤다면 일주도로 차례다.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통된 것은 지난 2001년 9월. 총연장 44km, 연인원 25만 명을 투입해 39년이 걸린 울릉도 최고 숙원사업이었다. 도로가 뚫리면서 한때 후륜구동차량의 경우 거꾸로 산길을 올라야 했던 태하령 구간 등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울릉주민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진풍경 하나가 없어진 것이다. 험준한 지형 탓에 아직 섬목~내수전 4.4km 구간은 개통되지 못해, 섬목에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일주관광은 보통 도동항에서 관광버스(1인 1만5000원·왕복 4시간)나 지프형 택시 (5시간 10만원)를 이용하면 된다.

섬을 품었다 밀었다를 반복하는 해안도로, 바다와 맞닿을 듯 시원스럽다. 어떤 구간은 꼬깃꼬깃 종이를 접어놓은 것 같다. 도로가 뱀처럼 구불구불한 현포령도 꽤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수평선 너머 먹구름이 문명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장막처럼 섬을 둘러치고 있다. 육지의 바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풍광이다. 바다 쪽에는 거북바위 사자바위, 내륙 쪽에는 송곳산 노인봉 등 갖가지 기암들이 인사하듯 차례차례 나타난다.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담그는 듯한 북면의 '공암'이 가장 인상적이다. 비록 먼 발치여도 바윗결이 코끼리 피부를 빼닮았다.

도로를 지나면 울릉도의 또 다른 볼거리 모노레일을 만난다. 보기에도 아찔한 경사진 밭 사이로 사람과 수확물을 싣고 나르는 모노레일, 멀리서 보면 놀이동산의 미니 열차같다. 울릉도에 이런 모노레일이 22km나 깔려 있다.
동해안 어업 전진기지인 저동항의 한가로운 풍경.

#울릉도 속살 속으로

대부분의 관광안내서를 펼치면 울릉도를 두고 꼭 '국내에서 7번째로 큰 섬'임을 강조한다(참고로 6번째 섬은 안면도다). 별로 크지 않다는 뜻이다. 동서 10km·남북 9.5km, 웬만한 도심 터널 3, 4개 길이에 불과하다. 면적도 경북의 0.4%에 주민이 채 1만명이 안 된다. 학교 운동장외엔 평지도 찾기 힘들다. 영화관, 볼링장도 없다.

그렇다고 4시간짜리 일주도로를 힁하니 돌고는 울릉도를 다 봤다고 말하면 섭섭하다.

울릉 주민들은 섬 안쪽으로 갈수록 울릉도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각종 천연기념물과 뭍에서 대면할 수 없는 경이로움, 원시림의 천국 성인봉, 나리분지의 영묘함 등. 하지만 울릉도의 진짜 보석은 바로 '울릉도 사람들'이다. 멋쩍은 농담을 건네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말 한마디가 그지없이 인정스럽다. 뱀, 공해, 도둑이 없어 '三無'.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아 '五多'로 불리는 섬. 이제는 정이 넘쳐 '六多의 섬'으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울릉주민의 삶을 잠시 엿보고 싶다면 가급적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하루 1만3000원 자유권을 구입하면 섬 구석구석을 나다닐 수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도동 읍내라도 한번쯤 걸어볼 것을 권한다. 서정 가득한 길목, 시간이 70~80년대에서 멈춘 듯하다.

# 떠나기 전에

울릉도 물가 조금 비싸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지는 않다. 생필품이나 공산품은 마진을 낮춰 육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더러 육지에서 궤짝 같은 짐을 들고 끙끙거리는 관광객들을 더러 만난다. 일단 가게에 들러 보면 괜한 수고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가스충전소가 없으므로 LPG차량은 집에 두고 가야 한다. 글 = 김성한기자 shkim0@kookje.co.kr
맨손으로 막은 日침탈 "6·25보다 끔찍"

1953~56년 독도의용수비대 헌신 이규현씨
향후 망양대(望洋臺)가 들어설 독도의 초소. 유독 괭이갈매기의 둥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내가 6·25도 참전했지만 독도에서 고생한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얼마전까지도 독도만 떠올리면 눈물이 났어. 그나저나, 일본 총리 그 사람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자꾸만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하니, 나원 참."

팔순을 넘겼어도 독도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과 목소리에 강단이 배어났다. 독도의용수비대 1진으로 참여, 군생활보다 많은 3년8개월을 독도수호에 헌신한 이규현(82·울릉읍 도동·사진) 씨. 독도의용수비대는 갓 군에서 전역한 울릉도 젊은이 33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일본의 독도 침탈을 거의 맨손으로 막아낸 우리 현대사의 영웅들이다. 현 독도경비대 전신이기도 하다. 오징어를 내다 판 돈으로 소총 등을 사들여 일본 순시선과 전투기에 맞서 수차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33명의 수비대원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자는 12명. 울릉도에는 그를 포함해 4명이 살고 있다

3t짜리 조그만 머구리배(잠수기어선)를 타고 7시간이나 걸려 들어간, 몸 하나 제대로 누일 곳 없는 바위섬 독도. 이 땅의 위정자들도 외면했던 그 척박한 돌섬에서 3년여를 버틴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기자 양반, 독도는 우리 땅이잖아."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 모습.
가장 힘들었던 독도의 추억으로 이 씨는 "먹고 마시는 문제"라고 했다. 식수가 바닥나 서도의 물골까지 외줄 밧줄을 잡고 바다를 건너다 너울에 쓸려 수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가제(물개의 울릉도 사투리)를 다 잡아 먹었겠어"라며 전리품처럼 간직해오던 엄지손가락보다 큰 물개 어금니를 꺼내 보였다. 맛이 개고기와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작년 3월, 노구를 끌고 반세기 만에 찾은 독도. 당시 후배 경비대원들에게 가슴에 새길 명언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켰으니 너희들은 빼앗기면 안돼!"

기획예산처는 이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8억7000만원을 들여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전시면적 80평)을 2007년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현재는 독도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수비대의 행적을 자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48명 살가운 삶이 피었습니다

척박한 땅 칼바람 뚫고… /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
포항~울릉도~독도 배편 / 천길 낭떠러지 누비는 경비대 목숨건 하루도
만 2년 근무 채워야하는 등대지기 고달픔도
운무 짙은 밤, 낭만과 정겨움으로 달래봅니다

삽살개 몽이(앞쪽·수컷)와 곰이를 데리고 관광객을 맞으러 선착장으로 향하는 독도경비대원들. 뒷편으로 독도등대가 얼핏 모습을 비춘다.
초록빛 독도, 계절적으로 육지보다 한달가량 늦어 이제야 봄이 한창이다. 군데군데 여지껏 유채로 오인된 노란 갓 군락이 눈부시다. 독도는 '이름'때문에 곧잘 하나의 섬일 거라 생각되지만 그렇지가 않다. 독도는 크게 어민대피소가 있는 서도와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주위에 크고 작은 바위섬과 암초 89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자가 머무른 곳은 해발 98m인 동도. 전체 해안선이 1.9km에 불과한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섬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도 서도의 김성도 씨 내외를 포함해 독도경비대(37명), 등대지기(3명) 그리고 육지에서 파견 나온 작업 인부(6명)들이 만들어 가는 살가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독도는 외롭지 않아요"

선착장에서 경비대 막사까지는 좁다란 외길 탐방로가 얼기설기 어지럽게 이어져 있다. 총 길이 796m. 계단은 283개다. 칼 끝 위에 세워 놓은 듯한 이 길을 벗어나면 이내 천길 낭떠러지다.

괭이갈매기들과 함께 기자를 가장 먼저 반기는 이들은 탐방로 작업에 바쁜 인부 아저씨들. 8월말까지 선착장에서 망양대까지 기존 철제 탐방로에 목조덱을 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뭍사람들 대부분이 독도 공사를 꺼려 '각별한 애국심'을 가진 이들로 선발했다. 그 중 5명이 부산 사람들이다. 고립무원의 위치 탓에 웬만한 공사도 육지보다 3~4배는 어렵다고 한다. 짭짤한 수당은 노고에 대한 작은 보너스다.

가파른 탐방로를 힘겹게 오르니 독도경비대 막사 앞 아담한 평지가 나타났다. 울릉경비대 소속 전경 37명으로 구성된 독도경비대는 6개 소대가 2개월씩 돌아가면서 독도를 지킨다. 두 번 정도 독도 근무를 서게되면 전역을 맞게 된다.

경비대원의 주임무는 초소 3곳의 경계와 레이더 관측을 통한 이상징후 포착이다. 일본 우익단체의 도발에 대비한 전투 훈련도 겸한다.

지은 지 14년된 막사는 생각보다 낡았다. 조만간 대대적인 막사 리모델링 공사가 있을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이 고독한 섬에도 피서지만큼 사람들로 북적댈 예정이다. 경비대원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대는 막사 3층 체육관. 가장 무서운 적 무료함과 고독을 메워줄 없어서는 안될 '무기창고'다. 위성접시를 이용한 인터넷, 러닝머신, 탁구대, 당구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그밖에 내무반에는 50인치 대형TV와 노래방기기도 있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지난해 한창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하루에 위문편지가 수백 통씩 쏟아졌다.

독도 근해를 밝히는 경비대 막사 바로 위 독도등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소속 등대지기 6명이 2개조로 3명씩 1개월 교대근무를 선다. 만 2년을 채우면 독도 근무에서 완전히 해제된다. 등대의 밝기는 촛불 133만 개에 해당하는 133만 칸델라. 해상 25km 밖에서도 식별 가능하다. 연근해 조업 어선이나 항해 선박에게 있어 생명의 빛이다.

경비대와 등대지기 모두 전기는 경유와 태양 전지판을 이용해 자가발전하고, 식수·생활용수는 조수기로 바닷물을 끌여와 정화 처리해 사용한다. 큰 불편함은 없어도 '물 쓰듯' 할 수는 없다. 식품보급은 한달에 한번꼴, 기상이 나쁘면 무기한 연기된다. 독도등대 정태영(49) 소장은 "지난해 겨울 기상악화 탓에 발이 묶여 근무교대 일수보다 보름이나 더 있었다"고 말했다.

독도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어찌보면 독도 그 자체다. 독도 근무가 이번이 두 번째라는 한 대원은 "한발짝만 발을 헛디뎌도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매서운 바람도 이들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 바람 한 점 막아줄 지형물이 없어 미풍도 이 곳에서는 칼바람으로 둔갑한다. 독도경비대 강이황 대장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매섭다"며 "대원들의 안전이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비대 막사와 등대 등 독도 내 모든 건물의 창문에는 청테이프가 발라져 있다.

#그 누가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독도 주민 김성도씨
갈 곳 없는 손바닥만한 섬이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꽤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들의 낙원. 땅과 하늘을 하얗게 뒤덮은 수만 마리의 괭이갈매기 외에도 온갖 희귀한 조류들이 보였다. 익히 알려진 슴새와 바다제비, 어디서 온지 모를 황로, 섬참새, 까마귀 등등. 발목에 'JPN'란 태그와 통을 단 전서구(傳書鳩) 두 마리가 목격됐다. 강 대장은 일본 순시선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로 추정했다. 아가리를 쩍 벌인 거대한 분화구인 천장굴 위에는 지난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독도 균열을 확인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측정기도 눈에 띄었다.

등대 앞에는 오래된 비석 5개가 있다. 독도의용수비대의 유일한 희생자 허학도 씨를 포함해 그 동안 독도에서 청춘을 산화한 경비대원들의 위령비다. 모두 근무 중 실족한 이들로 영원히 독도를 지키게 된 것이다.

독도등대의 정태영 소장
고작 하루치 기자의 눈에도 '독도는 우리 땅'이란 증거가 널려 있었다.

우선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경비대 막사 앞 '韓國領(한국령)'은 반세기가 지났어도 조금도 변색되지 않았다. 천장굴 근처와 옛 선착장에도 바위에 새긴 '韓國(한국)' 글자가 또렷했다. 몽돌해변에는 해일로 없어져 새로 복원한 독도 표석과 독도조난어민위령비가 있다. 그리고 그 옆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에는 '독도'란 글씨가 한자와 함께 병기되어 있다. 리앙쿠르는 국제해도 상의 독도를 지칭하는 프랑스어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대나무다. 일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독도를 줄곧 다케시마(대나무섬)라고 노래를 부르는 걸까.

#낭만 가득한 독도의 밤
고요한 독도의 밤을 깨운 '불청객' 오징어잡이 배.
하루에도 열댓번 얼굴을 바꾸는 독도 날씨. 기자가 찾은 이 날도 종일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이미 괭이갈매기의 울음도 잦아든 독도의 밤. 스산한 안개가 섬을 뒤덮어 한밤중에도 세상이 온통 뿌옇다.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연무는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됐다.

안개 장막을 뚫고 유유히 회전하는 등대의 스펙트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져온 손전등을 허공에 비추자 안개에 부딪친 불빛이 영화 속의 '광선검'처럼 빛의 기둥을 만들었다.

갑자기 밖이 조명탄을 터트린 것처럼 환해졌다.

혹시 일본의 도발? 황급히 나가 보니 앵커까지 내린 오징어잡이 배 한척이 선착장에서 한창 조업을 하고 있었다. 경비대의 관할 구역은 독도 내부. 독도에 발을 들이지 않는 이상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한다.대낮처럼 밝힌 집어등의 불빛이 안개와 부딪쳐 눈이 따갑다.

기자의 놀란 가슴과 달리, 독도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 덤덤했다. 일석점호를 마친 경비대원들은 여전히 체육관에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취사병들은 식당에 모여 야식으로 도너츠를 굽느라 바쁘다. 냄새에 선 잠을 깬 독도의 마스코트 삽살개 곰이, 몽이도 막사 앞을 서성댄다. 바람결에 묻어온 구수한 도너츠 냄새와 함께 정겨운 독도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향후 망양대(望洋臺)가 들어설 독도의 초소. 유독 괭이갈매기의 둥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 포항-울릉도-독도 배편
# 포항 → 울릉도 / ※썬플라워호:1일1왕복, 오전 10시
(3시간·5만4500원)
※나리호:1일1편도, 밤11시 30분 / (5시간30분·4만6500원)

# 울릉도 → 독도 (3만7500원)
※삼봉호(정원215명):오전 7시·오후 2시(매일) 2시간10분
문의 및 입도 신청:(054)791-8111~2
※한겨레호(정원 445명): 오후 2시(화·수 제외), 1시간10분
문의 및 입도신청:(054)242-5111~6
화 보 - 독도 · 울릉도

쉬이 허락지않는 한 점 땅, 그 곳에도 조국의 맥박이…

(전략)금수로 굽이쳐 내리던/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애달픈 국토의 막내/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동쪽 먼 심해선 밖의/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유치환의 '울릉도'에서).

동해 바다 저 멀리 아득한 물길의 경계를 지나면 전설처럼 그 섬들과 대면하게 될지니.

아, 미치도록 가고픈 우리땅 울릉도 그리고 독도여.

꼭 시인의 가녀린 마음이 아니어도, 그 섬에서 세상사를 잠시 잊는 것도 좋으리….

우리네 육지와 달리 해양성기후에 속하는 울릉도와 독도, 비·바람 많은 그 땅에 늦게나마 봄소식이 한창이다.

# 여기가 우리의 고향
바다에서 바라본 독도. 뾰족한 바위섬이 서도, 그 왼편으로 동도가 아련히 보인다. 파도가 부서지는 곳이 물개바위다.


# 원시림 전설 속으로
망향봉(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 괴봉에 둘러싸여 신비로움을 더 한다.


# 천국의 화원
동도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풍경. 노란 갓 군락이 하늘거리는 가운데 바다 위를 어선 한 척이 하얀 궤적을 그리며 유유히 지나간다.


# 웰컴투 '우산국'
관광객을 태우고 울릉도 도동항에 들어서는 여객선.


# 한국령
독도 동도 바위에 새겨진 한국령 글자.


# 멋쩍은 만남
새들의 고향 독도. 논두렁에서 개구리 등을 잡아먹는 여름 철새인 황로가 괭이갈매기와 함께 노닐고 있다.


# 세월의 풍파
독도등대가 천길 낭떠러지 위에 하늘과 맞닿을 듯 아득하게 서 있다.


# 독도 해저
어자원의 보고답게 수많은 수중 생명이 살고 있는 독도의 바다속.
사진 =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 국제.06.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