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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및 접사 사진/꽃이야기겔러리

꽃이야기107[진달래꽃]

꽃이야기107[진달래꽃]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진달래꽃은 두견화라고도 하고 참꽃이라고도 하지요.

이 우리와 함께 살아온 서민적인 우리꽃인 진달래에도 많은 전설이 있답니다.


1. 생태

진달래(Azalea)

학명 : Rhododendron mucronulatum var. lucidum Nakai

분류 : 현화식물문>쌍떡잎식물강>진달래목>진달래과

형태 : 낙엽활엽관목

자생지 : 산야 해발 50~2,000m

분포지 : 한국

국내분포지 : 전국

원산지 : 한국

크기 : 2~3m

꽃말 : 사랑의 즐거움, 절제

꽃색깔 : 진한 분홍색

개화시기 : 4

개화계절 :

종류 : 식용식물()

꽃생김새

양성화로 가지 끝에 2~5개의 진한 분홍색의 꽃이 모여 달림. 화관은 벌어진 깔때기 모양으로 5갈래로 갈라지고 10개의 수술과 길게 나온 1개의 암술이 있음.

특징

높이 2~3m 정도에 달하며 수피는 회색으로 어린가지는 연한 갈색을 띠고 비늘조각이 있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도피침형 또는 넓은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표면에 약간의 비늘조각이 있으며 뒷면에 비늘조각이 밀생한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양성화로 가지 끝에 2~5개의 진한 분홍색의 꽃이 모여 달린다.

화관은 벌어진 깔때기 모양으로 5갈래로 갈라지고

10개의 수술과 길게 나온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삭과로 원통 모양이고 암술대가 길게 남는다.

꽃을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 하기도 한다.

한국 원산인 낙엽활엽관목으로 전국의 산야 해발 50~2,000m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생한다.

2. 유래

진달래는 ‘진’과 ‘달래’가 합쳐진 이름이다.

즉 달래꽃인데, 그보다 더 좋은 꽃이라 하여 ‘진’이 붙은 것이다.

또 꽃 빛깔이 달래꽃보다 진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한 남도(南道) 산촌의 은어(隱語)에 앳된 처녀를 연달래,

숙성한 처녀를 진달래,

장년 여인을 난()달래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젖꼭지 빛깔을 연달래·진달래·난달래 따위 꽃의 빛깔로 비유한 것이다.

3. 약효

꽃은 이른 봄에 진달래전을 만들어 먹거나 진달래술(두견주)을 담그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꽃을 영산홍(迎山紅)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해수·기관지염·감기로 인한 두통과 이뇨 작용에 효과가 있다.

4. 전설

1) 진과 달래의 사랑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진이라는 총각과 달래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둘은 서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우환이 겹쳤답니다.

임금님께서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며,

처녀를 재물로 받쳐야 한다고 했답니다.

달래는 그 사실을 알고 재물이 되기 싫어 진과 함께 도망을 같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병사들에게 잡혔답니다.

병사들은 진을 궁궐로 데리고 갔답니다.

임금님은 노하여 진을 처형하라고 지시를 했답니다.

달래는 그 소식을 듣고, 계속 울었답니다.

이튿날이 진의 사형 집형날에 달래도 그곳으로 갔답니다.

달래는 진을 막으며, 나도 함께 죽어달라고 울부짖었답니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달래를 밀어내자

달래는 재 빨리 병사가 차고 있던 칼을 빼앗아 자신의 가슴을 찔렸답니다.

진도 그것을 보고 바로 달려들어 달래가 쥐고 있던 칼을 낚아채어

진도 자신의 가슴을 찔렸답니다.

두 사람의 가슴에서 흐르는 핏방울이 땅에 꽃무늬처럼 스며들어서

고운 꽃으로 피어났답니다.

사람들은 그 꽃이 진과 달래의 넋이라고 생각하고

그 후 사람들은 꽃이름을 진달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2) 촉나라 두우의 두견화 이야기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고 접동새를 일명 두견새라고도 합니다.
두견새는 봄에 오는 철새로서 이로운 새인데

두견새의 특징은 숲속에서 홀로 살며 둥지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은 휘파람새 등의 둥지에 한 개씩 낳아 놓음으로써

다른 새가 대신 새끼를 기르게 하며 자신은 조금도 자기의 새끼를 돌보지 않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래서인지 두견새의 울음은 듣는 이에 따라서는 처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거기에는 애달픈 전설이 전합니다.

옛날 중국 촉나라의 임금 망제는 이름이 두우였습니다.

위나라에 망한 후 그는 도망하여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한이 맺힌 두견새는 밤이고 낮이고

"귀촉, 귀촉(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하며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새를 귀촉도라고도 불렀습니다.


이와 같이 죽은 망제의 혼인 두견새는

그 맺힌 한으로 하여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이 맺힌 피가 땅에 떨어져

진달래 뿌리에 스며들어 꽃이 붉어졌다고 하고,

또 꽃잎에 떨어져 붉게 꽃잎에 물이 들었다고 합니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슬피 우는데

특히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우지 진다 하고,

한 번 우짖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도 합니다.


당나라 백거이의 <산석류, 원구에게 붙인다>라는 시에

"두견이 한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가지씩 핀다"는 구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아침에 그 새의 첫 울음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곧 그의 연인과 헤어지게 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3) 신라 수로부인과 노인 (헌화가)

신라 성덕왕 때 미인 수로 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강원도로 가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에 일행은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는 것이

어느덧 한낮이 되자 냇가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때 절벽에 현란하게 핀 진달래를 보고,

수로 부인은 따라온 하인에게 그 꽃 한 송이를 따오라고 명했으나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절벽이라서 누구도 엄두를 못냈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가 진달래를 꺾어다 주고

다음과 같은 헌화가를 지어바쳤다고 한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아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4) 두견주 이야기 -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

진달래 꽃잎을 섞어 담는 향기 나는 술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므로 두견주라고 부른다.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 있다.

그가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신선이 나타나 이르기를 아미산에 활짝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2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딸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술의 색은 연한 황갈색이고 단맛이 나며 점성이 있는데

신맛과 누룩 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 향기가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21도 정도이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로 회복에도 효과가 있으며,

특히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달래꽃의 꽃술에는 독성분이 있으므로

술을 담글 때 꽃술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통 민속주 제조 기능을 보존, 전승하도록 하기 위해

면천의 두견주 제조 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5) 진달래의 애절한 사연

하늘나라 꽃밭에 선녀가 살았습니다.

어느해 봄 꽃밭을 가꾸던 꽃분이 선녀는 하늘 아래에

꽃을 발견하고 놀라 그 꽃을 가지러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처음 보는 꽃인데...하늘나라 꽃밭에 심어야지."

선녀는 꽃을 잡고 쑥 뽑았는데 모래에 꽃아논 것처럼 쑥 뽑혀서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던 나무꾼이 꽃분이를 보고 집에 데려가서 간호를 해줬습니다.

꽃분이 선녀는 나무꾼과 지내는 동안 나무꾼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꽃분이와 나무꾼은 결혼을 했습니다.

꽃분이는 나무꾼을 벼랑 아래로 데려가서 꽃 이름을 물어 보았습니다.

나무꾼도 첨보는 꽃이라고 했습니다.

나무꾼은 꽃을 뽑아서 자기집 화단에 심고 꽃분이와 가꾸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꽃분이와 나무꾼에게 딸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기 이름을 뭘로 지을까요?"

"글쎄....내 성이 진씨니까. 진...진분이..진순이..."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진달래라고 지어라.........진달래..."

그래서 나무꾼과 꽃분이는 아기 이름과 꽃이름을 진달래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삼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꽃분이가 진달래 한뿌리를 들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나무꾼과 달래는 너무나 슬펐지만 꽃분이가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사또가 달래를 보고 반해서 둘째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습니다.

달래는 사또의 말을 한사코 뿌리쳤습니다.

그러자 열 받은 사또가 달래를 죽이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달래야...달래야.."

그러더니 달래의 시체가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진달래 꽃이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떠올랐습니다.

달래의 아버지는 달래를 부르면서 울부짖다 쓰러져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연분홍빛 꽃잎들이 날아와

아버지의 몸 위에 소복소복 쌓여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6) 조선 이조 태조왕 때 억울한 궁녀 이야기

조선시대 이조 시조 태조(성계)왕 때 일이였다.

가난한 집 어느 처녀가 궁 안에 궁녀로 들어가서

궁녀로도 아직 직위가 없고, 물을 깃는 무수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처녀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궁 안에 내시들이 침을 삼키고, 이 처녀를 못살게 굴었다.

자기들끼리 주먹질도 하고하며, 내시들의 신분을 지키지 못했다.

급기야 태조 임금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태조 임금님은 궁 안의 풍기 문란 죄로 다스려

궁 밖의 깊은 산골에 쫓아내어 거기에서 평생을 살라라고 궁녀에게 명하였다.

그 후 그 처녀는 궁녀의 꿈을 안고 궁 안에 들어가서 죄 없이 쫒겨나서

산골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그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고 한다.

너무나 억울하고 한을 품고 죽어서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산골에서

자기 참 뜻을 알아달라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그 꽃 이름이 참꽃으로 옛사람들은 불렸다.

지금에 와서는 그의 한을 달래라도 주듯이 진달래 부른다.

임금의 영이라서 지금도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봄이 되면

마치 자기를 좀 봐달라는 듯이,

자기 몸에 불을 지르는 듯이

산을 활활 태우는 이 진달래 꽃은 누구의 한이 맺인 피울음일까?

이 처녀의 영혼이 자기를 좀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람들은 진달래꽃을 보면 꺾어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어 한답니다.

그러나 진달래꽃은 집으로 가져오면 다른꽃과 달리 생명이 그리 길지 못하답니다.